201217 [연극in] 머뭇거리는 프로파간다와 사건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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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리는 프로파간다와 사건 다음날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다가 찢어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

장지영




이 작품은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논문을 작성한 사람이거나, 작성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작성할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성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조차 아니다. 이것은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다가 찢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꽤 길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 제목은, 이 연극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한다.



지금 여기의 프로파간다

사전에서 프로파간다를 찾아보았다.

“어떤 사물의 존재나 효능 또는 주장 등을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일 또는 그 활동. 발생적으로는 종교상의 포교(布敎)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선전활동이 전개되는 장(場)은 인간생활의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종교·도덕·정치·사상·경제 등 광범한 분야에 이르고 있다.”

흔히 선전으로 번역되는 프로파간다는 지금은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파간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극사를 가르치는 시간강사 경윤은 온라인 수업 도중 누군가가 유포한 사진 때문에 수업을 중단한다. 그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 때문에 경윤은 수업을 그만두게 되고, 교수의 논문을 대필하는 일을 하게 된다. 새마을 운동을 선전하는 차범석의 <활화산>과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김일성의 <성황당>을 비교하여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연구하는 논문을 작성하던 경윤은, 자꾸만 주인공이 아닌, 작은 인물이 눈에 밟힌다. 작품은 <활화산>과 <성황당>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프로파간다는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그 프로파간다가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그것은 두 작품의 배제된 캐릭터 ‘상만’과 ‘복순’, 그리고 경윤이다. 연극은 ‘우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우리가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할 때,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우리’에서 탈락되는 사람. 작품 안에서 권력을 가진 - 그 권력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까지를 포함하는데 - 교수가 ‘우리’를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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